올해 하반기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칼부림 예고 범죄는 게임계에서도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름 원신 오프라인 이벤트에 폭탄테러가 예고돼 관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시작으로, 오락실 칼부림 테러 예고에 전국 오락실이 영업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고, 검은사막 모바일 하이델 연회나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T1 현장 이벤트도 관계자 및 관람객 안전을 위해 취소됐습니다. 지난 11월 28일에 열린 넥슨 시위에 대해서도 칼부림 예고가 올라오며 경찰 다수가 현장에 대기하기도 했죠.
실제 칼부림이나 테러를 하지 않았더라도 인터넷에 칼부림 예고를 게시하여 체포된 사람은 어떠한 처벌을 받았을까요? 최근에 선고된 관련 판례 두 건을 살펴보면서 이 행위가 형법상 어떠한 범죄에 해당하는지, 처벌은 어느 정도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부림 예고 범죄에 적용되는 형법 조항
먼저, 칼부림 예고 범죄를 저지르면 형법상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형법 제283조의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협박죄란 일반적으로 상대에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 알렸을 때 성립되는 범죄인데요, 칼부림 예고는 본질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겨낭한 살인예고이기에 그 자체로 협박죄의 협박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적용되는 법조항은 형법 제137조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입니다. 이 부분은 상대를 오인 혹은 착각하게 만들어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할 때 성립합니다. 무차별 범죄를 일으킬 생각이 없었음에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칼부림 예고 게시글을 올려도 경찰은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예고된 현장으로 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장난으로 올린 글로 인해 경찰은 의도치 않게 오인 혹은 착각하여 순찰활동, 범죄수사 업무 등이 방해받은 것이 되므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합니다.
원신 사례와 같은 폭탄테러 예고도 적용되는 법은 동일합니다. 기본적으로 협박죄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가 성립될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적으로 행사를 주최한 호요버스 측에 대한 업무방해죄도 성립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 설명드린 부분은 실제 폭탄이나 칼을 준비하지 않고 예고만 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만약 실제로 폭탄이나 칼을 준비하여 범죄를 실행할 의지가 있었다고 판단한다면 성립하는 범죄 자체가 달라집니다. 일단 앞서 이야기한 것 중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범죄자가 단순 예고를 넘어 범죄도구를 마련해 실행에 옮길 준비를 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살인 예비죄, 폭발물에 관한 예비죄, 테러범죄방지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 새로 적용되어 처벌이 더 무거워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첫 사례, 시험 스트레스로 칼부림 예고를 한 사건
그렇다면 이제부터 칼부림 예고 협박에 대한 판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판례는 지난 11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된 2023고단5057 판결입니다.
피고인은 지난 7월 26일 0시 31분경 직장 사무실에서 휴대전화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해 '지금 신림역 2번출구에 칼들고 서 있다. 이제부터 사람 죽인다'라며 무차별 살인을 암시하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본문 내용은 "내가 죽여야할 건 사람이라 불릴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나... 이제부터 허물을 벗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로 일종의 '낚시'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피고인이 이 글을 읽은 사람들과 내용을 전달받은 신림역 2번 출구 인근 상인 및 주민들의 생명 혹은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이 글을 본 피해자 중 한 명이 신림역 2번 출구에서 흉기 난동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해 글이 올라온 당일 0시 50분경 112에 신고했고, 신고를 받은 서울 관악경찰서 소속 경찰관 18명이 1시간 가량 신림역 일대에 출동했습니다.
피고인은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유동 IP를 이용해 칼부림 예고 글을 10회 가량 인터넷 커뮤니티에 반복적으로 올렸는데요, 범죄 도중 휴대폰에 설치했던 커뮤니티 접속 앱을 삭제하고 다시 설치하는 등 범죄를 은닉하려는 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에 체포된 후 피고인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위와 같은 글을 올렸다고 변명했으나, 이에 대해 재판부는 '수험생활을 계속하는 한 향후 재범의 위험성도 높아 보인다'라며 불리한 양형(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내리는 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것)사유로 삼았습니다.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의 변호인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해서는 특별히 다투지 않은 것 같지만, 협박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항변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부분은 형사소송법에 관련된 주제로 다소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간략히 설명하자면 협박죄는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하는데,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에는 피해자가 '위 게시글을 열람한 사람들, 그들로부터 위 내용을 전달받은 신림역 2번 출구 인근 상인들 및 주민들'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어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으로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지만, 112에 직접 신고하며 특정된 피해자에 대해서는 명확히 협박죄가 성립했다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뿐만 아니라 협박죄 역시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피고인에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죠.
두 번째 사례, 호기심으로 신문기사 댓글로 칼부림을 예고한 사건
다음으로 살펴볼 판례는 지난 9월 25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선고된 2023고단2639 판결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살인 예고글을 게시한 사람에 대해 경찰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경히 대응하겠다는 기사에 댓글로 살인예고를 암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지난 8월 6일 저녁 6시 55분경에 "부천역 7시, 5명 목표"라고 적었죠.
앞에서 살펴본 사건과 마찬가지로 댓글이 달린 다음날인 7일에 피고인이 게시한 댓글을 보고 피해자가 112에 신고해 경찰관 총 104명이 부천역 일대에 약 7시간 동안 출동했습니다.
이후 체포된 피고인은 "신문기사에 위와 같은 댓글을 달면 실제로 경찰들이 출동할지 궁금해서 작성한 것일 뿐" 실제로 부천역에서 흉기난동을 벌일 계획은 없었다고 항변했는데요.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을 중하게 판단해 첫 번째 판례와 마찬가지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형사처벌로 끝나지 않는 칼부림 예고 범죄
앞서 살펴본 두 사건 모두 피고인이 초범이고, 구체적인 범죄 예고가 없었음에도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을 받았고, 이와 유사한 칼부림 예고 범죄에 대해서도 대부분 징역 1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현재 법원에서 칼부림 예고 범죄를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칼부림 예고 범죄는 형사처벌로 끝나지 않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7월 첫 번째 사건 피고인에게 민사적으로 4,3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를 시작으로 칼부림 예고 범죄 글 작성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즉, 법무부가 직접 민사소송 원고로 나서서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낭비된 공권력에 대한 금전적인 손해를 직접 받아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법무부가 칼부림 예고 글 작성자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청구금액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칼부림 예고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의 수당, 차량 기름값 등 범죄로 인해 발생한 비용 일체가 포함된 것으로 보이며, 청구금액은 최소 1,000만 원이 넘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범죄에서 법무부가 직접 범죄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인데요, 그만큼 칼부림 예고 범죄는 현재 검찰과 법원뿐 아니라 법무부까지 엄중히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따라서 장난 혹은 호기심으로라도 커뮤니티 및 게임 내 채팅에서 칼부림을 예고하거나 협박으로 의심을 살 수 있는 내용을 게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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