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메이커 시리즈는 92년 발매된 ‘어드벤처 쯔꾸르 98’에서 시작한 3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게임 제작툴 시리즈다. 특별한 프로그램 지식이나 기술 없이도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어 PC와 콘솔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임 제작을 지원해온 바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 중 몇몇 게임들은 ‘명작’의 반열에 오르며 하나의 IP로 도약하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긍정적인 사례가 대개 해외 게임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려 살펴본다면, 국내에도 이런 가능성을 가진 게임들이 숱하게 많다. 뿐만 아니라 RPG 메이커로 만든 게임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인디게임 개발자 ‘분필갈매기’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국내 ‘RPG 메이커 시리즈’ 개발자들을 위한 디스코드 운영부터, 게임잼 개최 및 다양한 소식 공유를 위해 분투하면서도 자신만의 게임 출시하는 일까지. 근면하게 달려온 개발자 분필갈매기가 인디게임 퍼블리셔 ‘사이코플럭스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고전 호러 어드벤처 ‘공간을 먹는 악어’를 선보인다. 이에, 게임메카는 개발자 분필갈매기와 인터뷰를 진행해보았다.
비밀을 가진 두 사람, 그리고 ‘공간을 먹는 악어’
공간을 먹는 악어는 10년 전, 자신이 운영하던 ‘유니콘 호텔’에서 날아온 알 수 없는 백지 편지를 받게 된 ‘제이 스미스’가 10년 만에 다시 찾아간 호텔에서 겪는 여러 일을 그린다. 이야기는 낡거나 누추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고급 호텔’이 된 모습에 놀라는 제이가 큰 위화감을 느끼며 호텔 직원들에게 10년 전의 유니콘 호텔에 대해 물으며 시작된다.
하지만 호텔 직원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유니콘 호텔은 10년 전 황무지에 갓 지어진 호텔”이라 말하고, 제이는 자신이 과거에 운영하던 호텔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자신의 과거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제이는 큰 충격을 받고, 그러던 중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호텔리어 ‘리베라’와 만난다.
플레이어는 각자의 비밀을 품고 진실을 찾아나가는 ‘제이’와 ‘리베라’를 통해 호텔에 숨은 수수께끼와 퍼즐을 풀어나가며 호텔과 관계된 ‘공간을 먹는 악어’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게임은 ‘이브’, ‘마녀의 집’과 같은 스토리 중심의 고전 호러 쯔꾸르 어드벤처 스타일로 전개되며, 주변을 조사하고 단서를 얻고, 퍼즐을 푸는 익숙한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이끈다.
‘쯔꾸르 게임’ 부흥을 위한 근면한 노력
개발자는 ‘분필갈매기’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1인 인디게임 개발자이자, 게임 개발 전공 대학생이다. 개발자의 닉네임과 게임의 이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이 됐는데,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독서실에 틀어박혀 자소서를 쓰다 너무 쓰기 싫다는 이유로 다른 생각에 빠졌고, 그 중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련 있는 두 단어의 조합이 뭐가 있을까"라는 자문으로 나온 답이다. 기묘한 조합인 ‘공간을 먹는 악어’와 ‘분필갈매기’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공간을 먹는 악어’는 개발자가 이 기묘한 조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을 시작해 첫 데모를 배포한 뒤로 약 4년 만에 완성에 이른 게임이다. 4년을 오롯이 개발에 보내지는 못했는데, 대학 생활과 군 입대로 불가피하게 잠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공간을 먹는 악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틈틈이 습작을 제작했다. 습작을 만드는 동안 스토리와 연출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도 했다.
그렇게 여러 일을 겪으며 준비하고 다듬어 온 게임의 출시를 앞두어서인지, 개발자는 “오랜 시간 만들었던 게임이 막바지에 다다르니 후련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이 게임을 별로 안 좋아하면 어쩌나 겁도 난다”며, “이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 활동하시던 다른 제작자 대부분이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지신 걸 보면 씁쓸하기도 하다”는 소회를 남겼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이 곧 개발자와의 대화
개발자는 앞서 말했듯 인디게임 개발 외에도 RPG 메이커로 만든 게임들, 이른바 ‘쯔꾸르 게임’을 국내에서 더욱 부흥시키고자 게임 커뮤니티나 행사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1맵 1치킨 알만툴 대회’로 잘 알려진 알만툴 공모전의 주최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국내에 정말 재미있는 쯔꾸르 게임을 제작 중이신 분들이 많다. 제 게임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게임에도 많은 관심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에는 쯔꾸르 게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개발자는 추후 만들고 싶은 게임은 어떤 모습이냐는 질문에 “장르 자체는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스토리가 돋보이는 게임을 만들 생각이다.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여건이 된다면 비동기 멀티플레이를 활용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더해, “이야기라면 폭력과 도덕에 관련한 것을 다루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지라, 재즈에 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와 게임을 조합해보고 싶다는 열정도 전했다.
“창작물을 창작하거나 소비하는 건 대화의 씨앗이자 그 자체로 대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이 곧 저와 대화를 나누는 셈일 것이다.”라고 말한 개발자 분필갈매기는 “제가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게임을 통해) 저와의 대화를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모쪼록 그가 더 많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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