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업계에서는 곧잘 개발자 주변 환경을 주제나 핵심 요소로 담은 게임을 만나볼 수 있다. 자신의 고시원 거주 경험을 게임의 핵심 내용으로 담은 더 브릭스의 '30일'이나, 대학 생활의 고난을 위트있는 고통으로 풀어낸 밤샘게임스튜디오의 '그래듀에이터', 자신의 군대 경험을 그린 플리즈 비 페이션트의 '핀란드 군인 시뮬레이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듯 자신의 경험을 살린 게임도 있지만, 반려동물이나 가족을 주제 혹은 캐릭터화한 게임도 있다. 작년 10월 출시된 판타지 어드벤처 ‘소원’도 그렇다. 한밤중 잠에서 깬 아이가 장난감 세계로 떨어지게 된 이야기를 그린 이 게임은 제목부터 개발자의 딸인 소원이의 이름을 빌려온 것인데, 게임 또한 소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의 모험을 그린다.
제목과 주인공, 게임을 가장 크게 보여주는 요소에 모두 딸아이의 이름이 들어갔다. 사랑이 깊게 느껴지는 이 게임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메카는 개발사 펌킴의 김상원 대표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기 없는 게임’같은 장난감 잭과 소원이의 이야기
‘소원’의 장르는 판타지 3인칭 퍼즐 어드벤처 게임이다. 소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꿈속 장난감 세상을 모험하는 이야기가 게임의 핵심 내용이다. 정확히는, 어딘가에 있는 못생기고 인기 없는 게임처럼 인기 없는 장난감 ‘잭’과 ‘소원’이가 꿈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인디 게임 개발자인 아빠를 장난감 제작자로 투영하고, 딸 소원이를 주인공으로 투영해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장난감 세계로 떨어지게 된 소원이는 부모님을 찾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장난감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형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플레이어는 이 과정에서 소원이의 시점으로 꿈과 기억, 시간에 대해 조망하게 된다.
김 대표는 소원을 ‘게임잼에서 시작된 딸을 위한 작은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개발 자체는 거대한 각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었던 만큼 감정표현 위주의 작업을 진행했고, 개발 당시에는 딸 소원이가 말을 못 할 나이여서 대화는 적었지만, 그 대신 소원이가 좋아하던 장난감을 게임속에 넣으려 노력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그러면서도 퍼즐과 어드벤처의 요소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곳에 신경을 썼다. 김 대표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게임의 주제처럼 표현력은 올리고 현실성은 줄이려고 했다”며, “캐릭터나 사물의 스케일감을 현실과 다른 비율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고전 클레이 아트가 이점을 많이 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팀버튼의 작품처럼 서로 상충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클레이 아트 비주얼로 만들어진 소원은 라이팅과 장난감이 더해져 오싹하고도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혐오감을 주거나 불편함을 주는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이 목적을 뚜렷히 전달하기 위해 질감과 조명으로 높은 퀄리티를 내면서도, 모델링은 로우 폴리곤에 가깝게 제작해야 했다. 이 퀄리티 간극을 메꾸기 위해 신경 쓴 것이 바로 쉐이딩이다.
여기에는 김 대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김 대표는 “게임제작에 도전하기 전, 광고회사와 애니메이션 라이팅 팀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렸다. 초기에는 실제처럼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둬 스킬업에 몰두했고, 이후로는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되는 조명 배치와 색감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을 중점으로 작업했다”며 게임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았는지 설명했다.
아빠이자 개발자로, ‘펌킴’이 소원을 만들게 된 이유
펌킴은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든 인디게임 개발사다. 이번에 출시한 소원은 딸을 위한 다정한 게임이지만, 그보다는 많은 게이머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ALTF4 개발사로 더 유명하다.
소원의 시작은 2018년 겨울, 에픽게임즈에서 진행한 EPIC 메가잼이라는 행사에서 나온 주제 ‘현실은 종종 부정확하다’라는 문장에서 시작됐다. 원래 김 대표는 7일간 이 주제로 게임을 만들고, 개발자가 아닌 직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당시에는 마지막 개발이라는 생각으로 ‘딸을 위한 게임을 만들자’는 마음을 담아 딸 소원이를 주제로 7일간 개발했는데, 이 결과물이 놀랍게도 ‘한국인 최초 메가잼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원동력이 부여되자, 이 게임의 상용화 버전을 만들자는 목표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김 대표는 ‘현실은 종종 부정확하다’라는 주제를 통해 구운몽을 떠올렸다고 답했다. 서포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해 만든 구운몽처럼 소재인 꿈, 기억, 시간이 마구 섞인 공간을 게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환상적인 세계와 꿈 속의 이야기, 사람보다도 커다란, 혹은 독특한 디자인의 장난감들은 전부 이 생각에서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게임이 전달하는 재미를 잊지 않기 위해 난이도 조절에도 신경 썼다. “누르다 보니 풀렸다”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고, 만약 그렇게 우연히 풀었어도 “아 뭐야 이거였네”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어렵지 않은 난이도지만 작은 성취감을 게이머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이에 반복되고 복잡해지는 퍼즐도 피하려고 했다. 김 대표는 게임을 만들며 “하룻밤 동안 깊지 않은 여러 꿈을 꾸는 느낌을 디자인과 퍼즐에 넣고 싶었다”고 밝혔다.
독특한 비주얼과 섬세한 라이팅, 목적이 뚜렷한 퍼즐 디자인이 더해지며 소원은 짧은 플레이 시간이 아쉽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호평 받고 있다. 혹자들은 이 게임 개발자의 전작이 ALTF4라는 것을 알고 “이런 게임을 만들 줄 알면서 그런 게임을 만드느냐”는 장난스러운 뉘앙스의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호평 받는 이야기를 딸인 소원이도 알고 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봐서 그런지 모든 아빠가 딸을 위한 게임을 만드는 줄 알 때도 있었고, 게임 개발은 특별한 일이 아닌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중간중간 만들던 게임을 함께 즐기기도 했고, 지스타에서 소원이와 함께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며,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큰 경험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고 답했다.
오는 2월, ALTF4 2로 찾아오는 펌킴
김 대표는 아직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튼튼한 베이스를 가진, 멋진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또 가끔 밥을 먹다가 타이쿤 게임을 만들고 싶기도, 운전 중 문득 액션게임이 만들고 싶어 지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다만 그 전에, 펌킴은 오는 2월 열리는 스팀 인디게임 축제 넥스트 페스트에 ALTF4 2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에 공개될 체험판에서는 게임 모드 중 하나인 ‘도전모드’를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넥스트 페스트가 종료되면 빠른 시일안에 앞서 해보기로 ALTF4 2를 출시해 다시 한 번 많은 유저들을 절망에 빠트릴 예정이다.
펌킴 김상원 대표는 “부족한 게임사이지만 다들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언젠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임을 만들겠다.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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