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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zip] 리니지 라이크 벤치마킹의 끝이 도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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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니지M(좌)와 R2M(우) BI (사진제공: 엔씨소프트/웹젠)

지난 3월 2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된 엔씨소프트 대 웹젠 게임 저작권 침해 소송 2심 판결이 게임업계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1심에서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명령받았던 웹젠이 2심에서는 169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으며, 사실상 게임 서비스 중단과 다름없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여기에 게임에 대한 법원의 세밀한 분석이 돋보였는데요. 2심 판결문을 통해 법원이 게임 이용자 반응을 어떻게 판단 근거로 활용했는지, 게임의 세부 시스템을 어떤 기준을 가지고 분석했는지, 웹젠이 게임 시스템을 대거 수정했음에도 왜 침해 중단이 인정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저작권 침해는 여전히 불인정,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은 강화

2심 재판부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엔씨소프트가 주장한 저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리니지M의 아인하사드 시스템을 비롯한 각종 게임 시스템이 대부분 '게임 규칙'이라는 아이디어 영역에 속한다는 기존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창작성이 인정된 부분도 1심과 동일하게 아인하사드 아이콘의 나뭇잎 모양과 색상 표현, 무게 시스템의 가방 아이콘 표현 등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부분적 유사성만으로는 게임 전체에 대한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판단은 1심보다 훨씬 강화되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엔씨소프트가 리니지M 개발을 위해 "1,000억 원가량의 개발비용을 투자하고 200명가량의 인력을 동원했다"라는 점을 인정하며, 각 구성요소와 그 선택·배열·조합이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라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게임 이용자들의 목소리, 게임 시스템 전반에 대한 세밀한 분석 등을 통해 R2M이 엔씨소프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평가했죠.

▲ 2심에서도 법원은 저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판단은 더 강화했다 (자료출처: 서울고등법원 2023나 2039688 판결문)

'UI 빼다 박았네' 게임에 대한 유저 반응이 법적 증거로

이번 2심 판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게임에 대한 유저 반응이 판결을 끌어내는 직접적인 판단 근거로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먼저 재판부는 "R2M 출시 이후 게임 이용자들의 인터넷 게시물과 언론 기사에서 R2 PC 게임은 다이내믹한 전투로 인정받는 게임인데, R2M에서는 화려한 스킬 이펙트나 타격감 등 전투적 묘미는 사라졌고, 실제 모습은 리니지M과 같은 경제 및 과금 시스템을 갖춘 원고 게임의 복제물이라는 반응이 다수 있었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더 나아가 법원은 이용자들이 "리니지 류 또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의 대표적인 예로 피고 게임을 들고 있다"라고 판단하며, 일부 이용자들이 R2M의 시스템을 '아인(아인하사드의 약칭)'으로 지칭하고, 게임 내 재화인 '골드'를 '아덴(리니지M 내 재화)'으로 부르는 등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했습니다.

특히 "리니지m 신섭(새로운 서버의 약칭)인가요?", "BM(Business Model, 비즈니스 모델)이야 그렇다 쳐도 UI도 그냥 갖다 박아놓고"라는 이용자들의 직접적인 반응을 판결문에 인용하며, 두 게임 간 유사성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중요한 증거로 채택했죠.

▲ 게임 커뮤니티 유저 반응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자료출처 : 서울고등법원 2023나2039688 판결문)

카드 뽑기 아이템 획득 확률까지 비교분석

또한, 법원은 단순히 게임의 전체적 유사성만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각 시스템의 구현 방식부터 UI 배치, 심지어 확률 수치까지 하나하나 비교해 검토했는데요, 88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판결문 중 상당 부분은 이런 게임 시스템에 대한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게 시스템에서는 "가방 모양 아래에 무게 비율을 표시한 숫자와 이로부터 좌측 시계 방향으로 무게 비율을 표시한 게이지가 1단계 파란색, 2단계 주황색, 3단계 빨간색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동일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무게 한계 도달 시 나타나는 경고 메시지까지 비교하며 리니지M의 "무게 게이지가 82%를 넘어 공격하실 수 없습니다"와 R2M의 "인벤토리 무게가 85%를 넘어 공격할 수 없습니다"라는 세세한 메시지까지 꼬집어 본질적으로 동일한 기능과 표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장비 강화 시스템에서는 "주문서와 장비를 '+' 기호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배치하고, 현재의 강화 단계 및 능력치와 함께 강화에 성공할 경우 변화될 수치를 표시"하는 방식이 동일하다고 분석했는데요. 이에 더해 강화 성공/실패 시 화면 표현도 세밀하게 비교했는데, '어두운 배경 속에 사각형이 빛나는 형태'로 결과를 표시하는 방식과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여 장비가 증발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까지 유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게임 시스템 전반에 대한 세세한 비교 분석이 돋보인다 (자료출처 : 서울고등법원 2023나2039688 판결문)

아이템 컬렉션 시스템에서는 컬렉션에 등록할 수 있는 아이템을 획득하면 해당 아이템의 우측 상단에 빨간색 점을 표시하는 방식과 '주의! 아이템 등록 시 해당 아이템은 소멸합니다(리니지M)', '컬렉션에 등록한 아이템은 소멸됩니다(R2M)'라는 경고 문구의 유사성까지 구체적으로 비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변신/서번트 시스템에서 카드 등급별 획득 확률까지 비교한 점입니다. 재판부는 '영웅 0.088%, 희귀 0.551%, 고급 20.212%, 일반 79.149%'로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동일한 확률을 적용했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동일 등급의 카드 4장을 합성하여 1단계 높은 등급의 카드를 획득'하는 방식과 '카드를 최대 9개까지 즐겨찾기 목록에 등록'하는 기능까지 완전히 동일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러한 세밀한 분석은 법원이 게임을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복합적인 창작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확률 수치까지 소수점 단위로 비교한 것은 재화를 획득하는 확률에 대한 데이터 설계까지 법적 보호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카드 뽑기를 통한 아이템 획득 확률까지 세밀하게 비교분석했다 (자료출처 : 서울고등법원 2023나2039688 판결문)

손해배상액을 R2M 매출 10%로 잡은 근거는?

이번 판결문에서는 손해배상액 산정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2심 재판부는 웹젠이 2020년 8월부터 2024년 6월까지 R2M으로 벌어들인 총매출액 1,691억 원의 10%에 해당하는 169억 원을 손해액으로 인정했습니다.

흥미롭게도 R2M 출시 후 리니지M의 매출이 오히려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피고 게임 출시가 없었더라면 원고가 더 많은 매출을 올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이 10%라는 비율을 산정한 핵심 근거 중 하나는 '엔씨소프트가 다른 회사와 체결한 라이선스 계약'이었는데요, 위 계약에서 엔씨소프트는 타 회사에 원고 게임 전체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총매출액의 10%를 로열티로 받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한편, 엔씨소프트는 이번 항소심에서 손해배상액으로 600억 원을 주장했는데요, 이에 대해 법원은 웹젠의 독자적 요소들(그래픽, 세계관, 스토리 등)과 엔씨소프트가 공개 컨퍼런스에서 '경쟁작의 매출 잠식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발언한 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손해액을 169억 원으로 산정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엔씨소프트가 자신 있게 내놓았던 발언이 법정에서는 손해액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한 셈입니다.

▲ 엔씨소프트가 과거에 맺었던 계약 조건이 손해배상액을 책정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자료출처 : 서울고등법원 2023나2039688 판결문)

게임 시스템 수정해도 법원이 이를 인정되지 않는 이유

한편, 웹젠은 1심 판결문 이후 소송 과정에서 문제가 된 시스템을 대폭 수정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웹젠이 2021년 4월 유피테르의 계약 시스템(리니지M의 아인하사드와 유사한 시스템)을 시간제 버프로 변경하고, 7월에는 무게 시스템을 4단계로 확대하는 등으로 수정했지만, "아이템 컬렉션, 변신/서번트, 강화 주문서의 핵심 요소 등 이 사건 각 구성요소 및 결합 시스템과 대응되는 부분을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R2M을 현재까지 제공하고 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수정 후에도 웹젠은 엔씨소프트의 성과를 무단 사용하는 부정경쟁행위를 하고 있다고 본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법원이 "게임 이용자들이 느끼는 피고 게임 수정에 대한 체감 정도가 그리 크지 않다"라는 실질적 판단기준을 제시한 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수정 전 이용자들이 "버프 수치가 0으로 되기 전에 J를 획득해야 했던 것이, 수정 후에는 J 효과 적용 시간이 종료되기 전에 J를 획득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며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J를 획득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판결문에는 "대부분의 MMORPG는 캐릭터 레벨이 상승할수록 추가 레벨 상승 난이도는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게임 이용자들의 레벨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나면 변신, 마법인형, 아이템 컬렉션 등 다른 요소를 통한 성장 방법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므로, J 시스템의 변경이 게임 이용자에게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MMORPG 장르의 특성까지 고려한 세밀한 분석을 보여줬습니다.

▲ 게임 이용자들의 체감이나 흥미 요소 유발 등을 고려하여 R2M의 수정된 시스템을 평가했다 (자료출처 : 서울고등법원 2023나2039688 판결문)

'리니지 라이크' 패러다임 전환의 분수령

이번 판결은 단순한 개별 사건을 넘어 국내 게임업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는 분수령이라고 할 만 합니다.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엑스엘게임즈와 진행 중인 '아키에이지 워' 관련 항소심 소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소위 '리니지 라이크'로 분류되는 게임 다수가 서비스와 관련한 법적 재검토가 불가피해졌습니다.

게임 이용자들의 온라인 반응을 주요 법적 증거로 채택하고, 시스템 수정만으로는 침해 중단을 인정하지 않는 이번 판례는 향후 유사 소송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업계 측면에서는 기존의 '벤치마킹'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독창적인 콘텐츠 개발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엔씨소프트와 웹젠 간 상고심(3심) 판단에도 귀추가 주목됩니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원심이 유지될 경우, R2M의 서비스 중단과 함께 게임업계 전반에 '모방 게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전해지는 셈입니다.

이번 판결이 국내 게임업계가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과도한 법적 제약으로 위축될 것인지도 앞으로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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