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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동성] 정말 게임이 ‘살인자’를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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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만평

아침 일찍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 전화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심각한 어투로 “어제 밤에 추척60분이라는 프로를 봤는데 거기서 게임중독 이야기가 나오더라 마약하고 똑같다는데 너 요즘도 게임을 많이 하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이죠 어머니. 전 밥 먹고 게임만 하는걸요. 안 하면 월급 안 줘요.” 무심한 아들의 대답에 통화는 이후 1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게임 하느라 ‘추척60분’을 못 봤던 저는 KBS홈페이지에 들어가 무려 700원을 질러 다시보기로 시청했습니다. 가관이더군요. 우선 주제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추적60분 "살인을 부르는 게임중독, 무엇이 문제인가?’

추적60분의 이번 포멧은 게임중독이 살인을 불렀다는 전제하에 게임과 살인에 대한 인과관계를 증명하려는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의 이야기도 들었지만 시청 시간 60분 동안 전반적인 내용 대부분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만 묘사하고 있어 사실상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습니다. 또, 단순히 게임물에 대한 내용정보 문구에 불구한 ‘약물’, ‘범죄’, ‘폭력성’ 등의 표시를 클로즈업하고 게임의 잔인성만을 편집해 보여주는 등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만 내보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제가 봐도 ‘저렇게 심각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게임중독자 3명에게 PET CT검사를 실시해 병리학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려고도 했지만 게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한다는 상관관계만 밝혀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테트리스에 중독된 게이머는 언제간 길가에 깔린 보도블럭으로 사람을 때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관장하는 전두엽과 인슐라가 이상을 보였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부의 논리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어디서 조사한 자료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게임중독자를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했습니다. 문화부는 2011년 업무브리핑을 통해 게임과몰입 상태에 있는 청소년을 51만 명으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불과 한달 만에 2배 뻥튀기 돼버린 셈입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최영희 의원의 발언이었습니다. 게임 자체를 아예 마약으로 규정하고 말을 하더군요. 전국 5만여 게임업계 종사자와 수백만의 게이머를 ‘약쟁이’로 만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랑스럽게 떠들었던 10조원 규모의 게임시장은 그만큼의 마약산업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최영희 의원의 발언

인과관계란 말 그대로 원인과 결과란 뜻입니다. 살인의 원인이 정말 게임 중독이고 최영희 의원의 말대로 게임중독자가 100만 명이라면 이 100만 명은 잠재적 살인자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차라리 약쟁이가 나을 뻔 했습니다.

추적60분은 60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중독의 문제점의 심각성에 언급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렸습니다. 청소년들이 왜 게임에 빠지냐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청소년들의 생각을 다 물어볼 수 없기에 제가 생각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첫 번째는 부모님의 무관심입니다. 두 번째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입니다. 세 번째는 스트레스를 풀만한 놀이문화 부족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좀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눈치 챘더라면 그래서 자식들이 숨쉴 수 있는 통로를 조금이라도 마련해 줬더라면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추적60분은 살인과 게임에 대한 인과관계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타겟을 자연스럽게 게임개발사에 갈수밖에 없었지만 게임중독자에게 ‘몇 시간 게임을 플레이 했느냐?’라는 질문보다 ‘왜 게임에 빠졌느냐’는 질문을 먼저 했더라면 자연스럽게 청소년의 가정환경의 분석으로 이어져 제대로된 인과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성부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셧다운제는 밤 12시부터 6시까지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당연히 실시해야 한다고 하지만, 학교 끝나고 학원 뺑뺑이 돌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의 휴식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당장 개발사 들도 셧다운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굳이 이런 제도를 밀어붙이려는 저의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추적60분이 방영된 직후 자신이 모 중학교 3년이라 밝힌 한모씨는 시청자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오늘 이구동성은 이 학생의 글로 마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모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학생입니다. 일단 형의 아이디를 빌려서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아까 전에 ‘추적 60분 : 게임 중독성’ 에 관해서 보았는데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제가 학교에서 제일 이상한 건 바로 ‘방과후 학교’ 입니다. 이름은 ‘방과후 학교’ 인데 하는 건 왜 공부죠? 보통은 예체능을 해야 되지 않나요? 거기다 저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방과후 학교에서는 공부를 시키고 있더군요. 이러니까, 게임을 하는 거 아닐까요? 성적고민, 남들이 우월하다는 생각, 진로 고민 등등 이 모든 것은 스트레스로 계속해서 쌓이는데 학교가 무슨 감옥과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시키는 건 공부뿐인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교육 없는 학교를 하는 아이들은 특히나 불쌍하고요... 그리고 도대체 자기 개발은 언제 할 수 있는 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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